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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스티븐 달드리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생전 처음 보게 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시상식 때문이었다. 거기서 니콜 키드만이 '디 아더스'가 아닌 '디 아워스'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화가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굉장히 보고 싶어 졌다. 합법적인 경로로 보려고 하니 이래 저래 장애가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DVD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주연 세 여배우가 전부 동성과 키스를 한다는 것이다.(콜록) 원작 소설을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그 중 한 캐릭터는 레즈비언 파트너가 있다는 설정인 듯 한데. 이런 바람직한 영화인줄 알았으면 진작에 볼 걸 그랬다고 약간 후회를 했다. 줄리안 무어가 배역을 맡은 로라 브라운의 키스씬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곧 수술을 하게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친구를 위로해 주다 돌발적으로 키스를 하게 되는데.. 그 완벽한 뉘앙스란! 분위기도 그렇고 반응도 그렇고 최고였다. 니콜 키드만의 키스씬도 괜찮았다. 상대가 자매만 아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근친은 싫어요) 그러나 상대가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무척 잘 드러났다. 훌륭한 연기! 메릴 스트립의 키스씬은... 뭐, 두 배우 다 있는데 메릴 것이 없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넣었나-_-?; 별 느낌 없었다. 메릴 스트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메릴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메릴의 연기는 그다지 나하고 코드가 안 맞는지 늘 별 감흥이 없다. 감동 받은 적이 없다. 위의 두 배우, 니콜 키드만이나 줄리안 무어는 완벽하리만치 배역에 녹아 들어서 소름이 다 끼쳤는데, 메릴 스트립은 특별히 강한 개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런 사람'이란 느낌? 그것이 더 대단한 연기인가? 영화나 연기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아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내 평가에 확신을 가지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니콜 키드만은 전혀 알아 보질 못했다-_-...;;;; 영화를 보는 내내 '니콜 키드만은 언제 나오지? 누가 니콜 키드만이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 였다. 눈화장을 지우고 코와 머리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원래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못 알아 보는 건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감독은 이 영화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나는 '삶'에 대한 메세지 보다도 억압된 여성들의 삶의 묘사에 훨씬 관심이 갔다. 버지니아 울프가 미치게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그녀가 여성이기에 받은 억압과 폭력 때문이다. 여성의 삶이 억압되면 그 자식의 삶도 일그러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로라 브라운과 그녀의 아들인 리차드에게서 잘 드러난다. 나는 이 영화가,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참 흥미롭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 여자지만, 만든 건 세 남자다. 여성성에 대한 깊은 이해- 늘 여성을 대상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밖에 파악할 줄 모르는 한국의 영화들만 보다가 이렇게 여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타국의 남성 예술가들을 보면 언제나 놀라게 된다. 이 정도의 이해는 보통이란 말인가? 그것이 맞다면 미국인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지금 우리 나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커녕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니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새삼 좋아졌다. 소설은 단 한권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지만 '자기만의 방'은 참 좋아한다. 그녀의 텍스트가 담고 있는 페미니즘적 담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영화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 바네사를 동성애적 관계로 묘사했지만(동성애 관계로 착각할 만큼 친밀한 관계라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울프가 동성애적 관계를 가졌던 것은 작가 비타 새크릴 웨스트 이다. 스페셜 피쳐에서 생존하는 실제 비타 새크릴 웨스트의 아들이 나와서 '우리 어머니와 울프는 연인 관계였지요' 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난 좀 쇼크를 받았다. 헉, 저런 걸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실 국내에 출시된 버지니아 울프 관련 문헌을 뒤져 보면, 버지니아 울프가 비타 새크릴 웨스트하고 연인 관계 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책은 거의 없다. 같은 작가라고 해도 랭보의 동성애 행각은 거의 상식처럼 여겨지는 데 반해, 왜 버지니아 울프는 그렇다는 사실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결혼했기 때문일까? 혹은 여성의 동성애는 남성의 동성애보다 더 감춰지고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순전히 내 입장인지도 몰라도, 나는 랭보의 동성애 스토리 보단 어렸을 적엔 이복 형제에게 성추행을 당해 평생 남편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지만 동성 연인이 있었고 그 연인과는 적극적인 성관계를 맺었던 버지니아 울프 쪽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동성애가 무엇일까? 하는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버지니아의 사례는 많은 가능성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런 면의 탐구에 있어서 이 영화는 꽤 만족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소설을 통한 허구적 탐구였기 때문에 다음에는 좀 더 사실에 기반한, 정면으로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새크릴 웨스트의 관계를 다룬 작품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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